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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약속

2021-09-29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약속
'글. 이정연'

    내가 오래 전에 한 약속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허무해 하자 친구는 말했다. 
    “약속이란 말은 원래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긴 거래요.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잘 지키지 않으니까 약속이니 비밀이니 하는 단어까지 만들어가며 다짐한 거잖아요.” 정말 그랬다. 약속이란 말 속에는 이미 ‘지키지 않을 때도 있음’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잘 지키라고 다짐을 하다 보니 적당한 구속의 말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그 말에 약속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새끼손가락까지 걸어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나는 새순이 돋는 교정의 벤치에 앉아 속삭였다. “내년에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여기서 다시 만나자!” 우리는 손을 잡고 운동장 가득한 아지랑이를 뚫고 하교 하였다. 이듬해 봄 고등학교에 진학한 우린 각자의 가방 무게에 짓눌려 그런 약속쯤은 까맣게 잊어 버렸다. 봄날 잠시 꽃 곁에 머물다 날아가 버린 나비처럼 우리의 약속도 그렇게 가벼이 날아가 버렸다.


 
    좀 더 커서 숙녀가 되었을 때 나와 의기투합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우리 평생 결혼도 하지 말고 이렇게 여행이나 다니며 함께 보내자.”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린 주말마다 맹렬히 여행을 다녔다. 어느 해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대구를 출발한 우린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낙산사호텔에 짐을 풀었다. 자고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보니 바다엔 주먹만한 눈송이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4월의 바다에 내리는 눈의 낭만에 우리는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몇 해 후 친구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곧 결혼하게 될 거 같아! 여행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는 마음 속 쓸쓸함을 감추며 친구를 축복해 주었다. 졸면서 건너편 차선으로 달리는 나보다는 든든한 남자가 운전하는 게 훨씬 나은 그림이 될 터였다.
    노이리는 고향마을처럼 정다운 곳이었다. 폐교된 분교가 하나 있었고 나는 가끔씩 혼자 그 학교에 놀러 갔다. 문이 잠긴 교실엔 녹슨 조개탄 난로가 있었고 칠판엔 아이들이 쓴 낙서가 그대로 있었다. ‘순아야 안녕!’ 폐교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쓴 인사말 같아 가슴이 아렸다. 순아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텅 빈 교실, 잊고 간 실내화 주머니가 나도 데려가 떼를 쓰듯 서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 때고 그곳에 가면 내 잃어버린 유년의 추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내 그리움을 감춰 두고 꺼내 보기엔 더 없이 좋은 장소였다. 
    흐드러지게 핀 조팝나무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던 봄날이었다. 내 곁에는 나와 꼭 같은 노스탤지어 친구가 함께 있었다. 운동기구도 놀이시설도 하나 없는 분교에서 우리들이 할 일이란 없었다. 아이들이 크레용으로 그려서 붙여준 그림도 창 너머로 보고 그도 시들하면 복도에 걸터앉아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친구는 조영남의 노래를 잘 불렀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잊지 말아 주오’ 같은 주옥같은 노랫말은 그 때 친구가 내게 가르쳐준 노래다. 경제를 공부하지 않았으면 성악을 전공했을 거란 친구가 ‘뒷동산 아지랑이’ 하고 노래를 시작하면 내 삶의 우울은 저만치 물러나고 새들도 놀라 잠시 지저귐을 멈추었다. 친구는 말했다. “웃고 있어도 슬픈 네 가슴속의 슬픔주머니를 꺼내 주고 싶어.” 나는 말했다. “그건 슬프기도 하지만 그리움 주머니여서 나를 지켜주는 힘이기도 해!” 라고. 



    오래전 2월 어느 눈 오는 날 그 친구와 나는 폐교가 있던 마을 노이리의 용화사에 있었다. 나는 얼마 전 결혼을 했고 친구는 발령을 받아 곧 서울로 가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이런 정다운 것들을 두고 갈 수도 잊을 수도 없었다. 호젓한 산사의 풍경이 좋아서 우린 해마다 그날과 같은 날인 2월 둘째 토요일에 용화사 앞 돌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이듬 해 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용화사에 들렀을 때 친구는 오지 못했다. 너무 멀어 시간에 맞추지 못했을까 싶어 용화사를 몇 바퀴나 돌아도 친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친구는 역시 오지 않았다. 약속을 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몇 해가 가는 동안 폐교는 허물어져 깨밭이 되었다. 쌓인 빈 깻단를 보고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쏟아진 깨알만큼 많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해는 콩을 심었는지 콩대가 밭 가장자리에 수북했다. 그 많았던 우리의 노래는 지금 어느 집 시렁에 메주로 달려 구수하게 익어가고 있겠지 생각했다. 몇 년이 더 지나자 나는 이제 밭은 위치도 정확하게 가늠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해를 거듭해 경작하다보니 밭둑의 경계가 허물어져 이제는 어디가 폐교의 운동장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때 나는 친구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무슨 일이든 완전하게 마무리되기를 원했고 내가 한 대부분의 약속 또한 잘 지키며 살았다. 그렇게 잘 지켜왔던 약속의 추억들은 왜 지금 나의 가슴 속에 남아있지 않은 걸까. 몇 해 지난 후부터는 친구가 오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해마다 약속장소로 간 까닭은 그런 약속을 간직하고 지키려 애쓰는 자신이 좋아서였다. 멋진 풍경 속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한 발짝 멀어져 풍경을 바라보면 아름답듯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 내가 삶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내 삶이 아름답다는 걸 잘 느끼지 못한다. 지나온 후 되돌아보면 평범한 일상의 시간조차 영화처럼 아름답다. 가끔 내 젊은 날이 곱게 추억되는 것은 그 지켜지지 않은 약속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이따금 노이리에 간다.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이 반짝거리던 청춘 눈부시던 방황의 시간을 떠올려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약속은 당연히 지켜야하는 것이고 그래야 할 만큼 소중하지만 반드시 지켜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켜지지 않아서 잊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그리운 약속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지켜지지 않았던 추억의 약속 하나 가슴에 품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가슴 따스한 일인지 알게 해 주었다. 영화 ‘마음의 행로’에서처럼 어느 날 문득 기억을 떠올리게 된 친구가 ‘맞아! 그 때 우린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지’ 하면서 그 돌탑 앞으로 걸어올까 싶어 나는 오늘도 용화사 돌탑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