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한반도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흔적을 되짚다 ‘선사 지질의 길’

2021-09-17

문화 문화놀이터


타박타박 걷는 문화유산 오솔길
한반도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흔적을 되짚다 ‘선사 지질의 길’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한탄강'

   지구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강이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구의 긴 역사를 품고 흐르는 듯하다.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려 독특한 지질을 형성한 이 강은 우리나라 어느 강보다 변화무쌍하고 수려하다. 이곳은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한탄강이다. 


용암이 빚은 예술품, 한탄강
    한탄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평강군의 추가령곡이다. 왠지 낯선 지명이다. 알고 보니 수복하지 못한 북한 땅이다. 6·25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 철원, 연천을 거쳐 임진강과 합류한다. 공교롭게도 강물과 휴전선이 비극적 만남을 이어가듯 같은 선을 따라 흐른다. 강변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주검이 산을 이루었으며 강물은 온통 붉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  탄강을 한숨 쉬며 탄식한다는 뜻의 한탄(恨歎)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다. 동족상잔의 상흔이 깃든 한탄강을 마주하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하지만 한탄(漢灘)이란 ‘한여울’ 즉, 큰 여울을 뜻한다.       여울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강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러니 한탄강은 큰 협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많은 묵객이 절경에 반한 화적연


   한탄강의 협곡은 선사시대 역동하던 지구의 단면이다. 그 당시 한탄강 상류 지역에서는 여러 차례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다. 그때 분출된 용암은 한탄강을 따라 파주 임진강까지 약 110km를 흘러 한탄강 주변 곳곳에 거대하고 평평한 현무암 용암대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형성된 용암대지가 식으면서 4~6각형의 현무암 기둥 모양(주상절리)을 형성했다. 이 기둥 틈 사이로 오랜 세월 비와 강물이 스며들어 흐르고 풍화와 침식을 거듭하면서 기둥이 떨어져 나갔다.
   그 결과 20~40m의 깊은 협곡이 만들어졌고 벽면을 따라 기둥 모양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과 용암대지라는 지질학적 특수성, 아름다운 경관을 보존하고 긍정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지역주민의 노력 등을 인정해 2020년 7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다.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10선 가운데 하나인 ‘선사 지질의 길’은 한반도에 아로새겨진 지구의 오랜 선사시대 흔적을 따라가는 길이다. 
켜켜이 쌓인 땅의 기억, 한탄강
    유네스코가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은 지오트레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지오트레일이란 천연의 지형과 지질유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 생태, 문화적 가치를 천천히 걸으며 즐기는 것, 한마디로 고요한 지구의 숨결에 발맞춰 걷는 여행이다. 한탄강 지오트레일 코스는 벼룻길, 어울길, 한탄강 주상절리길, 한여울길 등 10곳이다. 그중 포천 비둘기낭 순환 코스는 비둘기낭폭포에서 출발해 하늘다리와 멍우리협곡을 거쳐 비둘기낭폭포로 되돌아는 순환코스이다. 총거리 6km이며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과 비경을 압축해 놓은 듯해 으뜸으로 손꼽힌다.
   비둘기낭 순환코스를 걷기에 앞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센터를 찾아보자. 우리나라 최초로 지질공원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용암이 만든 한탄강의 생생한 모습과 그 속에 피어난 삶과 문화를 챙겨볼 수 있다.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협곡탈출 4D 라이딩 영상관, 한탄강 지질생태 체험관 등을 빠뜨리지 말자. 화요일은 휴관이며 무료 관람이다. 한탄강지질공원센터에서 비둘기낭캠핑장과 야생화생태단지를 지나면 비둘기낭폭포 입구에 닿는다. 비둘기낭폭포는 하식동굴과 주상절리, 판상절리, 협곡, 용암대지 등 한탄강 일대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특한 폭포지형으로서 지형·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비둘기낭의 낭은 주머니 ‘낭(囊)’이다. 
 
01.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비둥기낭폭포    02. 녹음이 짙은 비둘기낭폭포    03. 협곡을 가로지르는 한탄강 하늘다리

    폭포의 생김새가 비둘기 둥지처럼 옴팍한 주머니를 닮아서이다. 또 산비둘기 수백 마리가 서식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비둘기낭폭포는 나무계단을 여럿 내려가야 볼 수 있다. 한 계단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폭포수 소리가 점점 커지고 냉하고 습한 기운도 더 강해진다. 또 어둠과 녹음이 더 짙어져서 별세계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다. 드디어 폭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관람객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터트린다. 17m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소(沼), 곧 무너질 것 같은 아찔한 주상절리가 만들어 낸 절경이다.
    비둘기낭폭포는 한탄강의 여러 동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데다 지금도 침식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까닭에 동굴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폭포 앞에서는 한여름 무더위쯤은 쉽게 잊을 수 있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천연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하는 셈이다. 그 덕분에 과거엔 군단장 전용 하계 휴양지로 인기였다고 한다. 이처럼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선덕여왕’, ‘추노’, ‘최종병기 활’, ‘늑대소년’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비둘기낭 순환코스에서 요즘 핫한 곳은 한탄강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하늘다리’이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과 절벽을 잇는 하늘다리는 길이 200m, 폭 2m의 보행자 전용 현수교이다. 아찔한 높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리인지라 강한 바람이나 사람들의 발걸음에 민감하게 흔들리고 출렁인다. 게다가 교량 바닥 세 곳에 특수 강화유리를 깔아놓아 한탄강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80kg 성인 1,500명이 동시에 건너거나 초속 40m의 강풍에도 견디도록 만들었다니 조심해서 보행하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비둘기낭 순환코스 반환지점에 멍우리협곡이 있다. 명승 멍우리는 ‘멍’과 ‘을리’가 합쳐진 지명이다. ‘멍’은 온몸이 황금빛 털로 덮인 수달을, ‘을’은 한자 지(之)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멍을리였던 것이 세월이 지나 멍우리가 되었다. 멍우리협곡의 주상절리대는 높이가 30~40m에 달하며 협곡의 길이는 4km 넘게 펼쳐진다.
포천의 또 다른 한탄강 지질명소
    멍우리 협곡에서 가까운 명승 화적연은 조선시대 묵객이 감탄하던 명승이다. 화적연은 ‘짚단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라는 뜻이다. 농경사회였던 당시 이곳에서 기우제를 자주 지냈다. 모르긴 해도 짚단을 쌓았다는 이름이 한몫했을 것이다. 강물은 화적연 왼쪽에서 흘러들어와서 오른쪽으로 시나브로 빠져나간다. 화적연 앞 넓은 곳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고운 모래밭에 앉아서 닭 볏처럼 봉긋한 바위와 고요한 물길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에 쉼이 깃든다.
 
포천 아트밸리는 포천석으로 불리는 화강암을 채취하던 채석장이었다.

    이 고요한 풍경에 취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화적연의 뛰어난 풍광을 금강산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대표작 보물 《해악전신첩》 속에 담았고, 면암 최익현은 금강산유람기에 ‘화적연’이란 시를 남겼다. 한탄강 지오트레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포천아트밸리를 찾는다. 포천석으로 불리는 화강암을 채취하던 광산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폐광된 뒤 방치되었다. 하지만 골칫거리였던 폐채석장을 우리나라 최초로 친환경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하면서 지금은 포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했다. 이곳은 암맥, 절리, 단층 등 다양한 지질구조가 관찰되어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 인기가 높다. 돌 문화 전시관을 비롯한 천문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